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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오펜하이머> 관람평 등장인물 결말 해석

by 워싱턴 블루베리 2024. 6. 18.

오펜하이머

영화 <오펜하이머> 관람평 후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최신작 오펜하이머는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7관왕을 달성하여

독보적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명성대비 아카데미 실적이 아쉽던 놀란 감독에게 첫 수상의 명예를

안긴 작품으로 아카데미 이후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작품인데요. 최근 국내 재개봉을 진행한데 이어

드디어 OTT로 공개 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과학적 이론을 다룬 어려운 내용이 펼쳐질 거라고 예상했는데 생각과는 다르게 핵을 만드는

과학자의 고뇌와 그가 겪은 어려움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일본과의 전쟁을 끝낸

원자폭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원자폭탄의 아버지라고 불렸던

주인공이 어떻게 희생양이 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선동에 앞장섰던

'스트로스'의 마지막까지 함께 담아냈습니다. 독특한 점은 원자폭탄의 탄생한 과정, 폭탄이 일본에

투하된 이후 열린 청문회, '스트로스 제독'의 청문회까지 세 개의 이야기를 교차로 보여주며 전개

되었다는 것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세 이야기의 색감을 모두 다르게 하면서 명확한

경계를 나눴고,시각적으로 다른 분위기를 자야 냈습니다. CG를 사용하지 않기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CG 없이 핵폭발 장면을 구현해 냈습니다.

크리스터 놀란 감독은 테넷은 끝으로 18년간 함께 해왔던 워너 브라더스와 결별하고, 유니버설

픽처스와 새로 손을 잡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첫 작품이 바로 오펜하이머 영화였고,

영화가 워너 작품이었다면 아마 지금쯤 국내서는 OTT로 볼 수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유니버설 영화들은 넷 플릭스로 잘 공개되는 편이라 놀란 감독이 앞으로

유니버설과 함께 하는 한 계속해서 국내서도 OTT로 만나볼 수 있을 전망입니다.

영화 속 출연자 등장인물

킬리언 머피(J. 로버트 오펜하이머, 원자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가 개발에 도움을 준 두 개의 원자폭탄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되었습니다.

BBC에 따르면 최소 20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오펜하이머의 강의, 인터뷰 등 기록

영상들을 여러 시간 시청했고, 물리학자 킵 손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답니다.

 

에밀리 블런트(캐서린 오펜하이머, 오펜하이머 아내)

식물학자였던 캐서린 푸닝은 오펜하이머와 만나 결혼하고 맨해튼 계획을 위해 그와 함께

로스앨러모스로 이주하기 전에 3차례 결혼했었습니다.

오펜하이머 부부 사이에는 피너와 토니라는 두 자녀가 있었습니다.

 

딜런 아널드(오펜하이머의 동생 프랭크)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입자물리학자인 동생 프랭크를 맨해튼 개획의 연구원으로 영입합니다.

1945년 7월 그는 최초의 핵폭발 실험인 트리니티 실험을 계획하고 실행했습니다. 딜런 아놀드는

프랭크 오펜하이머의 아들 마이클과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역할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톰 코티(알베르트 아인슈타인)

1939년 독일이 원자력을 연구할 수 있으니 미국도 빨리 해야 한다고 축구하는 내용으로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에 공동 서명함으로써 맨해튼 계획이 시작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메듀모딘(버니바 부시)

다른 국가들이 원자폭탄을 개발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고, 루스벨트 대통령으로부터

원자폭탄개발을 승인받았습니다.

부시는 맨해튼 계획의 과학자 모집과 개발을 도우며, 세계에서 가장 먼저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게 했습니다.

 

마티아스 슈바이크회퍼(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독일의 이론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는 원자폭탄의 탄생에 기여한 양자역학의 개척자로 193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하이젠베르크는 독일의 원자폭탄 프로그램을 감독했지만, 작동하는 폭탄의 개발 수준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일부에서는 독일 과학자들이 프로젝트를 몰래 방해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맷 데이먼(래슬리 그로브스 주니어 장군)

그로브스는 1942년 9월 맨해튼 계획을 이끄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뉴멕시코주 로스앨러모스에 있는 연구소소장으로 오펜하이머를 선택했습니다.

 

베니샤프디(에드워드 텔러 박사)

이론물리학자 텔러는 오펜하이머 밑에서 맨해튼 계획에 참여했지만 막강한 파괴력 때문에

오펜하이머는 반대했던 수소폭탄의 개발을 지지했습니다.

텔러는 1954년 보안 청문회에서 오펜하이머에 불리한 증언을 했습니다.

 

조시하트넷(어니스트로렌스)

로렌스는 맨해튼 계획에 사용된 사이클로트론을 발명한 공로로 1939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원자를 쪼개는 핵분열을 발견한 그는 발견은 원자폭탄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수소폭탄개발의 지지자였고 오펜하이머와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케네스 브래너(1922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닐스보어) 덴마크의 물리학자인 보어는 런던에서

맨해튼 계획에 참여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니콜라스 베이커라는 가명으로 로스앨러모스 팀의

컨설턴트로 합류했습니다.

오펜하이머 결말 해석

오펜하이머가 그의 제자들을 가르치는 와중에 독일이 핵분열을 통해 엄청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라는 소식을 듣고 이를 실제로 이론으로 증명하게 됩니다. 영화에서 나오진 않았지만 아인슈타인과

실라르드가 이 소식을 접하고 핵무기 개발을 건의했고 루스벨트대통령은 독일에게 밀릴 수 없다며,

핵무기를 빨리 만들라고 작전을 허가했다고 합니다. 핵실험을 하는 와중에 히틀러는 자살하지만

원자폭탄 개발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맨해든프로젝트는 마침내 1945년 7월 16일 핵실험 트리니티

실험에 성공합니다. 빛이 소리보다 더 빠르기 때문에 빛이 먼저 나오고 소리가 나중에 나오는

실제감을 더하며 여기에서 오펜하이머는 유명한 일화와 대사가 나옵니다. "몇몇은 웃었고, 몇몇은

울었으며, 대부분은 침묵했습니다, now i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 이 당시 미국은

히틀러가 자살함으로써 독일은 항복했지만 아직 일본은 항복하지 않아서 원자폭탄의 타깃은

독일이 아닌 일본으로 향했습니다. 이후 4년 뒤 소련도 핵개발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미국은

내막이 있다면서 맨해튼 프로젝트에 스파이가 있는 거 아니냐 하는 의심을 합니다. 오펜하이머

청문회가 열리며 자신이 공산주의자소련의 스파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청문회에서 자신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을 했지만 청문회 이후 과학계에서 쫓겨나고

영화는 끝납니다.

오펜하이머와 같은 수많은 애국자가 있었지만 무능한 지도자들은 결코 그들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대통령을 만나러 간 오펜하이머는 조언을 했다가 징징대는 애 취급을

당하기도 했고 누구보다 자신을 도와줬어야 할 거 같은 스트로스는 오히려 적이 됐으니.. 마지막에

오펜하이머가 훈장 받았을 때도 주인공은 정치인이라고 합니다. 원자폭판과 관련된 정책에서도

거의 발언권이 없었고 소신 발언을 했던 오펜하이머는 그렇게 됐으니 이런 부분도 너무 과하지 않고

담백하게 넣어서 마지막까지 깔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핵무기가 정당하다 아니다를 떠나서

핵무기의 윤리적인 문제를 오펜하이머의 삶에 투영하여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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